티벳에서의 7년
티벳에서의 7년은 오스트리아의 유명 산악인 하인리히 히러(Heinrich Harrer)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이다.
아이를 원한 적이 없던 그는 임신한 아내를 뒤로한 채 히말라야의 최고봉 중의 하나인 낭가 빠르바트로의 원정을 떠난다.
이기적인 성격의 하인리히는 혹한의 산정에서 몇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지만, 이것은 그의 험난하고 기나긴 여행의 시작에 불과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영국군 포로수용소 생활, 그리고 죽음을 건 탈출, 귀향을 위해 다시 한번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히말라야에서의 사투 그리고 티벳의 라사라는 금단의 도시에 이르는 여정을 통해 점차적으로 다른 인생관을 갖게 된다.
영화 소개에는 달라이 라마를 만나 우정을 나누면서 완전히 다른 인생관을 갖게 됐다고 소개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순간의 변화가 아닌 고난과 역경 속에서 차츰 변화해 가며 큰 깨달음을 얻게 된 한 요소가 달라이 라마와의 만남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외국인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티벳의 이방인이 된 하인리히.
티벳의 모든 국민에게 추앙받는 종교적, 영적 지도자인 13세 어린 나이의 달라이 라마를 만나 그에게 서방 세계의 문명을 가르쳐 주며 우정을 쌓아가며 티벳에서 7년의 세월을 보내게 된다. 평온했던 영혼의 나라 티벳의 역사와 한 사람의 영적 성숙과 변화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티벳에서의 7년 을 보고 난 후, 티베트의 역사가 궁금해졌다.
중화민국은 오족공화를 내세우고 있었는데 오족공화는 청 시절 영토를 오롯이 보존하고자 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중일 전쟁과 국공내전 후 장제스와 국민정부를 대만으로 몰아내고 수립된 중화인민공화국은 티베트를 위와 같은 중화민국의 주장과 비슷한 주장을 하며 1950년 티베트를 침공하였다고 한다.
중국의 점령 이후 백만의 티벳인이 죽었고 6천 여곳의 사원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전쟁에서 패한 티베트는 중국과의 협상을 통해 티베트가 중국의 영토임을 인정하지만, 달라이 라마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선에서 타협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차근차근 토지개혁, 반종교 정책과 같은 공산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기득권인 승려들과 귀족층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어나서 티베트 정세는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1958년 중국 전역에서 대약진운동이 야기한 대기근이 발생하자 원래부터 식량 사정이 좋지 않았던 티베트의 반중 감정은 폭발하게 된다.
(대약진 운동은 한마디로 농공업의 대증산 계획 정책인 농촌이 주체가 된 혁명이다. 시대를 역행한 농업집단화..
대실패로 끝난 대약진운동으로 중국의 경제는 파탄 났고 수천만 명의 인민이 굶어 죽으며 역사에 길이 남을 대기근으로 전락했다고 한다.)
1959년 티베트인들은 라싸를 중심으로 집단 무장봉기에 나섰으나, 압도적인 화력을 가진 중국군의 공세 앞에 무장봉기는 실패로 돌아가고, 수만 명의 사상자를 남긴 채 실패로 끝났다. 이후 두어 차례 크고 작은 무장봉기가 시도되었지만 이역시 번번이 실패로 끝나고 달라이 라마 14세 텐진 갸초의 비폭력 평화 투쟁 노선의 영향도 있어 무장 전쟁은 점차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당시 티베트의 무장 저항군은 1970년 무렵까지 CIA의 지원을 받아 중국군과 맞섰지만 1973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국교 수립을 하면서 중국에 대한 적대 정책을 철회하고, 그에 따라 미국이 주는 지원도 끊키게 되어 티베트 저항군들은 중국과 싸우다 전사하거나 인도로 망명하고 무장 항쟁도 끝났다고 한다.
1959년 중국의 티베트 통치에 반대하여 결국 인도에 망명정부를 수립한 달라이 라마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불교의 가르침을 알리는 한편 국제적을 중국을 규탄하고, 국제 사회에 티베트 독립을 지지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공로로 그는 1989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노벨평화상도 티베트 독립의 가능성을 높여주지는 못했다.
현재 달라이 라마의 망명정부는 분리독립을 고집하지 않고 실질적인 자치권을 얻는 수준까지 양보했지만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의 자치권 요구마저도 거부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정부는 달라이 라마 자체가 미국의 조종을 받는 첩자라고 주장하면서, 그와 티베트 망명정부와의 어떤 협상도 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티베트 연구가들의 말에 따르면, 중국정부는 달라이 라마가 늙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고 한다. 더불어 달라이 라마는 지금도 하러 와는 절친한 친구라고 한다.
중국의 침공이 시작되고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하러의 독백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나들이를 즐기며 행복해하던 자리는 중국 장성 셋이 타고 오는 비행기를 위한 활주로가 되어 버렸다.
군인들이 근처에서 기동 훈련을 했다.
구닥다리 갑옷을 걸쳐 입은 병사도 있었다. 낡은 총과 투창이 이들이 가진 전부다.
평화를 상징하던 나라에서 어쭙잖은 군대를 꾸리고 있다니 순진한 사람들의 얼굴에 전쟁의 두려움이 피었다.
그 모습에 가슴이 아파진다.
조국의 부끄러운 과거 약자를 억압하던 지난날 내 나라의 행적 정말이지 수치스럽다.
한때는 나 역시도 같은 신념 아래 살았다는 게 한탄스럽기 짝이 없다.
무자비한 중국과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티베트인들은 적이야말로 위대한 스승이라 일컫는다.
인내와 연민을 깨우치게 해 주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이렇게 철석같이 믿는 종교의 힘이 중국으로부터 자국을 보호해 줄 거라고 생각한다.
장성들의 방문을 준비하며 라싸 전역에서 다양한 의식이 거행됐다.
버터로 조각한 신들의 형상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듯 작열하는 태양에 녹아 버렸다.
즉위식을 앞두고 한 쿤둔(달라이 라마)의 말을 끝으로 글을 줄인다.
자기 성찰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는 법입니다.
피나는 노력과 수행이 뒤따라야만 하죠
그러니 열심히 일하며 진정한 구원을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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